그게 오늘의 나다.


검은집이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 지금 스포일러가 최대한 많이 기재된 블로그와 감상평을 보며, 이 영화를 어떻게 볼것인지 연구중이다.
보고는 싶고, 보자니 무섭고...

그나마, 이 영화에는 심적공포(귀신)가 없다는 것에 용기를 내서 이렇게 연구중인 것이다.
시청시간은 한낮으로 정했고, 화면을 최대한 밝게 하고, 일단 빨리 감기로 화면을 빠르게 돌려본 후 연상공포는 없는지 확인과정을 거쳐 볼륨을 적당히 조절하고 시청할 예정이다.

이건 좀 병적인 것 같다.

물론,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슬래셔물에는 눈을 감아도 심적 공포물은 즐겨봤다.
정확히는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부터 이러한 증상 역전이 생겨난듯하다.

입대 전까지만 하여도,

공포물을 보며 영화 중간중간 비명을 지르거나 눈을 가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킥킥대며 납득을 못할만큼 공포물에는 무뎠고, 음산한 분위기라도 연출되면 "귀신 나올타임인가?
어디 얼마나 샤프한 귀신인가 기대 해보마.." 라는 기분으로 덤덤하게 들여다 보고 있을만큼
공포물에 한해서는 최강의 둔한 반응을 보였었던 듯하다.

그러던 것이, 전역 이후에는
패밀리가 떴다에서 폐공장화면이 나오자 바로 채널을 돌릴만큼,
심지어 웃자고 만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음산한 장면이라도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릴만큼,
여름만 되면 납량특집이라는 미명하에 여기저기 채널마다 툭툭 튀어나오는 화면들때문에 채널 선정도 신중히 할만큼
예민하고 심약해져 버렸다.

대부분의 국내외 출시영화는 물론 독립영화까지 빼놓지 않고 볼 만큼 영화광이면서도,
전역이후 나온 공포물은 디아이와 장화홍련이 전부다. 그나마 몇몇씬은 결국 못봤다.

호스텔을 무덤덤하게 볼 수 있을만큼 슬래셔 무비에는 여전히 강하지만,
심적 공포물(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귀신)에는 여전히 취약하다.
친절한 금자씨의 슬래셔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마지막에 등장하는 꼬마 아이에는 눈을 질끈감고 귀를 막을만큼
답이 않나오는 존재하지 않는 부분에 대하여서는 무한대 심적 유약상태에 빠진다는 의미다.


왜 그럴까?


슬래셔는 보면 볼수록 무뎌지기 마련이다.
입대전까지만 해도 순대나 삼계탕, 심지어 비계부분을 떼지 않은 삼겹살 조차 못 먹을 정도로, 비위가 약해빠졌었는데,
먹는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며 몬도가네식 먹성으로 변해가고, 부대창설기념일마다 할당되는 살아있는 돼지를 도살해보며,
(처음 시작은 죽도록 싫었지만, 돼지의 배를 처음 쫘악 갈랐을때 가득 들어찬 내장들을 보며 내장들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던..) 그리고, 부대에서 사고예방 목적이라며 틀어준 온갖 시신들의 실제 영상(내가 경험해본 최고의 리얼 슬래셔, 특히 폭사한 시신들)도 보며 점점 더 시체나 동물의 사체에 대하여서는 둔해져 가는게 정상일 것이다.

비위는 학습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며, 무뎌지며, 후유증도 없다.
그렇기에 의사나 법의학자가 태연하게 일처리를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러나, 심적 공포물은 양상이 다르다.
후유증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떤 공포물이든 일단 볼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생각보다 심각하고 폐해도 크다.

혼자 10여년을 살면서 다른 계절은 둔한데, 여름만 되면, 유난히 혼자 잠자는 게 무섭게 느껴지는 밤이 많아진다.
어둠속의 옷가지나 사물들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고, 눈을 감으면 공포가 극대화 되기도 한다.
결국 여름철 어쩌다 한번씩 찾아오는 이러한 불쾌한 공포는 불을 켜고 잠을 청하게 만들기도 한다.

군생활동안 혼자서 달빛이 고작인 야산중턱에서 잠을 잔적도 있을만큼 심적공포가 없었을 시기도 있었는데,
왜 갑자기 여름만 되면 간혹 잠을 못잘만큼 공포에 시달리나.
이 것이 심적 공포물의 후유증이다. 군대에 있을 동안만큼은 영화는 물론이고, 미디어도 충분히 접하기 어려운 시기였던 만큼,
보지를 않다보니 상상도 않게된다.

즉, TV라는 매체만 없다면, 여름에도 이런 불편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불편이 있기에, 이러한 후유증이 있기에,
슬래셔나 스릴러, 지독한 고어물과는 달리, 심적 공포물은 무조건 피하고 보는 것이다.

캄캄한 지하실, 서늘한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어두운 야산속 무덤주변, 불꺼진 시체 안치소가
심야 유흥가보다 월등히 안전함에도, 혼자 침낭 펼 용기가 없다면,
당신도 심적 공포물의 정신적 피해자다.
실제 대상은 존재하지 아니하나, 오로지 자신의 상상속에서만 존재하는 존재...


이에대한 최고의 예방약은 무조건 피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얘기를 늘어놓는 것이 그다지 부끄럽거나 하지는 않다.
최대한 피해온 만큼, 어두운 장소에 대한 공포는 덜 한편이라,
남들이 심적으로 꺼리는 장소에서 비교적 맘 편하게 잘 지내는 편이므로...

물론, 또 갑자기 서늘함을 느끼며 상상의 나래를 시작하다보면 무섭겠지만...
오랫동안 안 봐온 만큼 조금씩이나마 그러한 장소에서의 두려움은 조금씩 치유되며 무뎌져 가는 듯하다.

가뜩이나 더워서 짜증나는 날, 더 짜증나게 하는 심적 공포연상물 범람과 어찌 싸울지 또 걱정이 된다.

내게는 벌거벗은 여자가 무서운 귀신보다 정신건강에 덜 해로운데, TV는 무슨 기준으로 유해정보와 유익한 정보를 구분하는 것인지, 제발 어느정도 걸러서 미리 경고를 하고 내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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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ol oktour 트랙백 0 : 댓글 0